천안문 사태 30주년, 재연 가능성 우려하는 홍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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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문 사태 30주년, 재연 가능성 우려하는 홍콩
  • 나일 보위 기자
  • 승인 2019.06.07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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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문 사태 추도식에 수만 명의 홍콩 시민이 참여해 촛불을 들었다. 홍콩 시민들은 중국의 강압적인 통치로 홍콩에서 천안문 사태가 재연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홍콩에서 열린 천안문 사태 30주년 추도 집회에 참석한 시민 (사진: AFP)
홍콩에서 열린 천안문 사태 30주년 추도 집회에 참석한 시민 (사진: AFP)

천안문 사태 30주년을 맞아 홍콩에서 촛불을 든 수만 명의 시민이 참여한 가운데 추도식이 열렸다. 빅토리아파크 내 축구장에서 열린 추도 집회에서 참가자들은 중국 정부의 강압적인 통치에 대한 저항의 뜻이 담긴 노래를 불렀고 구호를 외쳤다. 일부 참가자들은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오는 추도사를 들으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하지만 비극의 장소인 베이징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평온했다. 지난 30년간 천안문에서 중국의 민주화를 요구하던 시위대에 대한 폭력적인 진압은 중국 언론과 소셜미디어상에서 엄격한 검열 대상이었다. 

중국 땅에서 천안문 사태 희생자 추모 집회가 열리는 유일한 지역은 홍콩과 마카오뿐이다. 중국 당국에 대한 불신이 팽배한 홍콩 시민들에게 천안문 사태가 발생한 6월 4일은 잊을 수 없는 날이다.

23세의 대학생인 티파니는 “6월 4일의 기억에 두려움을 느낀다”며 “천안문 사태 생존자들을 보는 것은 매우 감동적”이라고 말했다. 그녀는 과거 학생 대표로 추도사를 한 적도 있다. “집회 참석은 중국 정부가 매우 비인간적이고 최근 홍콩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고 있다는 것을 되새기게 한다.”

다수의 홍콩 시민은 중국의 1국 2체제 시스템하에서 보장된 홍콩의 정치적 자유와 언론 자유가 약화하면서 홍콩의 자치와 문화가 중국 정부에 의해 침해당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중국 정부는 2047년까지 홍콩의 자치를 보장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활동가들은 지난 1989년 발생한 천안문 유혈 사태가 언젠가 홍콩에서 재연될 수 있다는 두려움에 떨고 있다고 말했다.

 

천안문 사태 추도 집회에 참석한 홍콩 대학생이 시위대의 구호가 적힌 배너를 들고 있다. (사진: AFP)
천안문 사태 추도 집회에 참석한 홍콩 대학생이 시위대의 구호가 적힌 배너를 들고 있다. (사진: AFP)

지난 1989년 4월 수천명의 대학생이 중국 공산당의 부채에 반발하며 집회를 열었다. 자유주의 사상과 개혁주의 지도자 후요방의 죽음에 자극을 받은 이들은 언론과 표현의 자유 보장을 포함한 개혁과 함께 청렴하고 개방된 정부를 요구했다.

시위가 계속되면서 한때 시위 참석자가 100만에 이르기도 했고 단식 투쟁도 벌어졌다. 중국 정부는 학생들과 전국에 방송된 텔레비전 토론회를 열기도 했으나, 결국 5월 18일 협상은 결렬됐다. 시위대는 자오쯔양 당 총서기를 지지하는 그룹과 리펑 총리를 지지하는 강경파로 분열됐다.

리펑 총리는 5월 20일 계엄령을 선포하고 시위를 “반혁명 반란”으로 규정했다. 중국의 경제 개혁을 주도했던 자오쯔양 당 총서기는 26일 시위대에 우호적이라는 이유로 숙청됐고 가택 연금 중 2005년 사망했다.

6월 3일 밤 중국 인민해방군은 천안문으로 출동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목격자와 활동가들은 인민해방군이 무장하지 않은 학생들을 향해 발포해 수백 명이 사망했다고 전했다. 이후 현재까지 중국의 어느 지도자도 폭력적인 시위 진압에 대한 자책이나 사망자에 대한 애도의 뜻을 표하지 않았다.

시위대는 평화적인 시위를 이어갔으나, 군대가 진압에 나서자 돌과 화염병을 던지며 저항했다. 군과 시위대의 충돌로 일부 군인이 폭행을 당했고 수십 대의 버스와 경찰차, 무장 트럭이 불에 탔다.

시위가 진압된 6월 4일 아침 20세기의 대표적인 사진 중 하나가 찍혔다. 흰색 셔츠를 입은 청년이 혈혈단신으로 전차 행렬 앞에 서 있는 이 장면은 저항운동의 상징이 됐다. 하지만 아직도 이 진은 중국 당국의 엄격한 검열 대상으로 남아 있다.

1989년 4월5일 아침 촬영된 역사적인 사진 (사진: 트위터)
1989년 4월5일 아침 촬영된 역사적인 사진 (사진: 트위터)

천안문 사태는 사태가 발생 수년 전에 시작된 덩샤오핑의 경제 개혁에 찬물을 끼얹었다. 당시 영국의 식민지로 남아 있던 홍콩에서도 대규모 동조 시위가 일어났고 홍콩의 학생들은 중국의 민주화 시위를 지원하기 위해 수백만 달러를 모금하기도 했다.

홍콩의 자치를 보장한다는 중국의 약속이 지난 20년간 지켜진 것으로 보이지만, 홍콩 자치 정부의 법 개정 추진이 외국 외교관과 외국 기업, 친민주주의 성향의 의원들과 활동가들의 우려를 불러오고 있다. 탈주범죄자 법 개정안(Fugitive Offenders Ordinance amendment bill)로 알려진 법안이다.

캐리 램 홍콩 행정수반의 지지를 받는 이 개정안이 의회에서 통과되면 특별 행정구역에서 체포된 탈주자가 중국으로 송환돼 재판을 받게 될 수 있다. 변호사와 판사들은 이런 법안은 강제 송환 여부는 공정한 재판을 전제로 판단한다는 영국 법체계에 기반을 둔 홍콩의 관습법 체계에 대한 심각한 도전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민주주의 활동가뿐 아니라 홍콩의 야당 의원들도 중국의 인권 의식과 사법 체계의 결함을 지적하며 이런 법 개정안에 반대하고 있다. 중국 법원의 유죄 판결 비율은 99%에 달하고 공안은 자의적인 혐의로 체포를 자행한다. 외부와의 연락이 차단된 채 몇 개월간 구금이 이루어지는 경우도 있다.

친 중국 성향의 홍콩 입법부는 조만간 중국으로의 강제 송환이 가능한 법 개정안을 통과시킬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 상공회의소와 미국 등 일부 국가는 이 법 개정안이 홍콩의 자치를 약화하거나 위협한다는 판단을 하고 있다.

미중 무역전쟁이 미국의 국가 안보에 미치는 영향을 모니터링하고 있는 미국 의회의 미중경제안보검토위원회는 최근 이런 개정안이 지난 1992년 제정된 미-홍콩정책법에 대한 재고의 근거가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미-홍콩정책법을 통해 미국은 홍콩을 무역과 투자, 이민, 법 집행, 국제조약 등에서 중국과 다른 독립된 국가로 인정하고 있다. 미국 대통령은 홍콩이 충분히 자치적이지 않다고 판단할 경우 홍콩에 대한 이런 대우를 철회할 수 있는 권한을 갖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 법이 미중 무역협상에서 미국의 협상력을 높이는 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분석가들은 미국이 홍콩의 독립된 지위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홍콩의 무역과 금융시스템이 심각한 타격을 받게 되고 홍콩에 진출한 외국 기업과 미국 기업의 본사 역시 피해를 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홍콩의 활동가인 앤디 챈은 지난해 8월 홍콩 외신기자 클럽에서 열린 외신기자들과의 간담회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홍콩에 대한 이런 대우를 철회해 홍콩의 자치와 민주주의적 자유를 훼손한 중국 정부를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챈은 홍콩의 독립을 지향하는 정당을 설립했으나, 홍콩 자치정부에 의해 활동이 금지됐다.

챈은 중국 정부와 홍콩 자치정부 양쪽으로부터 비난을 받았고, 당시 외신기자클럽 회장으로 이 간담회를 주재했던 파이낸셜타임스의 빅터 말레 전 아시아 뉴스 에디터는 지난해 10월 비자 발급을 거부당해 사실상 홍콩에서 추방됐다.

지난 4월에는 소위 점령 운동(occupy movement)을 주도한 활동가들이 지난 2014년 말 79일간의 아시아 파이낸셜센터 시위 당시 이 센터의 일부 기능을 마비시킨 혐의로 투옥됐다. 이 시위는 홍콩 역사상 가장 규모가 크고 오래 지속한 저항운동으로 기록됐다.

로우이 인스티튜트(Lowy Institute)의 벤 블랜드 연구원은 “홍콩의 여론은 2014년 이후 분열 양상을 보인다”며 “공산당과의 공조를 원하는 사람과 민주화를 추진하고자 하는 사람들로 양분돼 있다. 하지만 민주화를 지향하는 사람들은 중국에 대해 어느 정도 저항을 해야 하는지를 놓고 분열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중국 정부와 홍콩 자치정부의 탄압이 눈에 띄게 강해지면서 저항의 대가가 커져 민주주의 활동가들이 어려움에 부닥쳐 있다”고 전했다.

수만 명의 시민이 촛불을 들고 참석한 홍콩의 천안문 추도 집회 (사진: 나일 보위 기자)
수만 명의 시민이 촛불을 들고 참석한 홍콩의 천안문 추도 집회 (사진: 나일 보위 기자)

홍콩대학의 정치학자 조셉 청 교수는 “우리 모두 우리의 핵심 가치와 생활방식이 침해당하는 것에 매우 우려하고 있다”며 “중국 정부와 홍콩 자치정부에 대한 반감이 상당하다. 중국 정부의 기본적인 입장은 국가 안보와 주권, 독립과의 전투 등을 (홍콩에 대한) 탄압을 정당화하는 변명거리로 사용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홍콩은 아직 중국 본토에서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자유를 누리고 있고 천안문 사태에서 발생했던 시위에 대한 유혈 진압도 홍콩에서 생각하기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30년 전의 유혈 진압이 국가의 이익에 기여했다는 중국 정부의 확신이 더욱 커지면서 많은 홍콩 시민들이 홍콩의 장래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 중국 고위 당국자들은 천안문 사태 유혈 진압에 대한 발언을 자제하고 있으나, 웨이펑허 중국 국방부장은 최근 중국의 “안정과 발전”을 학생 시위에 대한 “적절한” 대응과 연결 시키는 발언을 하면서 우려를 불러왔다.

중국의 한 관영 언론도 이번 주 사설을 통해 “논쟁을 피하는 정책”이 경제 발전에 기여한다며 “천안문 사태의 경험이 미래의 주요 정치적 소요에 대한 백신”의 역할을 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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