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산지에겐 항상 침묵할 권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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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산지에겐 항상 침묵할 권리가 있다
  • 아시아타임즈코리아
  • 승인 2019.05.20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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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로 사이트 위키리크스의 공동창업자 줄리안 어산지의 체포는 저널리즘의 심장을 강타한 미국 정부의 복수 행위나 다름이 없다.

어산지의 체포는 저널리즘의 심장을 강타한 미국 정부의 복수 행위나 다름이 없다. 
     
폭로 사이트 위키리크스의 공동 창업자인 그가 체포된 2019년 4월 11일은 서양의 ‘가치’와 ‘표현의 자유’ 역사에 불명예스러운 날로 기록될 것이다. 
     
언론인이자 발행인인 어산지는 이날 런던 에콰도르 대사관에서 수갑을 찬 채 강제로 끌려 나왔다. 미국이 국제통화기금(IMF)에게 42억 달러의 차관 제공을 지시하며 경제적 부담을 덜어주자마자 에콰도르의 외교관들은 런던 경찰이 대사관에 들어와서 그곳에서 장시간 망명생활을 해온 어산지를 체포할 수 있게 해줬다.
     
따질 걸 따져보자. 어산지는 미국 시민이 아니라 호주 시민이다. 위키리크스도 미국 언론기관이 아니다. 따라서 미국 정부가 어산지를 인도, 기소, 감금할 수 있다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장소와 시간 불문 누구나 추적하는 걸 합법화시킬 것이다.
     
그것을 ‘언론의 살해 행위’라고 부르자. 

 

거듭된 폭로에 박힌 미운털

어산지는 2010년 4월 이라크전 당시 미군의 민간인 학살 영상을 인터넷에 공개해 주목을 받았다. 이어 7월에는 아프가니스탄 전쟁 관련 국방부 비밀문서 9만여 건, 10월에는 추악한 이라크 침공의 실체가 담긴 비밀 문건 40만 건 가까이를 공개했다. 그리고 12월에는 전 세계 미국 대사관들이 펼쳐온 갖가지 비밀 활동을 담은 외교전문 25만여 건을 세상에 알리며 미국 정부의 수배를 받아왔다.

2017년 5월 어산지가 에콰도르 대사관 발코니에서 연설하고 있는 모습 (사진: AFP)
2017년 5월 어산지가 에콰도르 대사관 발코니에서 연설하고 있는 모습 (사진: AFP)

2017년 5월 어산지가 에콰도르 대사관 발코니에서 연설하고 있는 모습 (사진: AFP)

어산지는 2010년 3월 미 육군 정보분석 요원이었던 첼시 매닝(개명 전 브래들리 매닝) 전 일병이 국방부 컴퓨터에 저장된 암호를 해독한 뒤 위의 기밀자료를 빼내는 불법행위를 돕고, 매닝이 추가 자료를 수집하도록 ‘사주한’ 혐의를 받고 있다. 

하지만 미국은 어산지의 혐의를 결정적으로 입증할 증거를 제시하지는 못했다는 점에서 지금 미국은 모든 수단을 동원해 취재 관행을 전면 범죄화하려는 행위를 저지르고 있다고 밖에 볼 수 없다. 

미국의 기업 언론들도 비밀 정보를 불법 보도하는 경우가 흔하다. 매닝은 그가 다운받은 자료를 ‘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에 제보하려고 했지만 거절당했다. 그제야 그는 위키리크스를 찾아갔다. 그러자 특종을 빼앗긴 미국 기업 언론들이 위키리크스를 러시아의 스파이로 몰아가기 시작한 건 어찌 보면 당연하다.

어산지 체포 이후 웨스트민스터 법원 밖에 모여있는 그의 지지자들 (사진: AFP)
어산지 체포 이후 웨스트민스터 법원 밖에 모여있는 그의 지지자들 (사진: AFP)

베트남전의 실체가 담긴 '펜타곤 페이퍼'(Pentagon Papers)를 폭로한 다니엘 엘스버그(Daniel Ellsberg)는 2017년에 이미 이렇게 경고한 바 있다. 

“오바마 대통령이 국가 안보와 관련된 탐사보도의 뿌리를 추적하며 언론에 맞서 법적 다툼의 물꼬를 텄다면, 트럼프 대통령은 정보 수집자 및 재배자(와 그들의 상사와 출간인)를 추적하고 있다. 바꿔 말해서 어산지의 기소는 언론·종교·집회의 자유를 정한 미국 헌법 수정 제1조에 어긋나는 ‘극단적 카드’를 최초로 꺼낸 셈이다.” 
     
현재 미국 법무가 제기하는 어산지가 컴퓨터 비밀번호를 훔쳤다는 주장은 단지 그에게 덮어씌울 혐의의 아주 일부에 불과하다. 미국으로 송환될 경우 어산지는 추가 공모와 심지어 1917년에 제정된 간첩법(Espionage Age) 위한 혐의도 받을 수 있다.

위키리크스 편집위원인 크리스틴 흐라픈손(Kristinn Hrafnsson)(우측)과 어산지의 영국 변호사인 제니퍼 로빈슨(Jennifer Robinson)이 웨스트민스터 법원 밖에 서 있다. (사진: AFP)
위키리크스 편집위원인 크리스틴 흐라픈손(Kristinn Hrafnsson)(우측)과 어산지의 영국 변호사인 제니퍼 로빈슨(Jennifer Robinson)이 웨스트민스터 법원 밖에 서 있다. (사진: AFP)

어산지의 유능한 변호사인 제니퍼 로빈슨은 그의 체포는 ‘언론의 자유’와 관련된 문제임을 지적했다. 올바른 지적이 아닐 수 없다.  
     
이제 공은 영국 법원으로 넘어갔다. 어산지는 미국으로의 송환 절차가 진행되는 몇 달 동안 영국에 수감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다. 
     
어산지는 발행인이다. 그는 절대 어떤 정보도 '누설'하지 않았다. <뉴욕타임스>와 <더 가디언>지도 매닝이 밝혀낸 정보를 보도했다. 예를 들어, 어산지의 정보 유출 논란에 앞서, 지난 2010년 위키리크스가 공개한 미군 아파치 헬기가 2007년 민간인을 공격한 장면이 담긴 동영상 ‘부수적 살인’(Collateral Murder)에 대한 논쟁이 선행돼야 한다. 
     
하지만 미국의 딥스테이트(민주주의 제도 밖의 숨은 권력집단)이 어산지와 매닝을 용서할 리 없다. 두 사람에겐 ‘뉴욕타임스’와 다른 이중잣대를 들이댈 것이다. 
     
미국 중앙정보국인 CIA 국장 시절 마이크 폼페이오 현 국무장관은 “위키리크스의 정체를 직시해야 할 때가 왔다”며 “위키리크스는 러시아 같은 국가 세력이 조종하는 반국가적 민간 첩보 서비스”라고 말했다. 
     
위키리크스에 대한 이런 식의 선전포고는 그것이 얼마나 위험한 탐사취재 전문 언론이 됐는지를 보여준다. 

어산지가 미국으로 송환되더라도 그에게는 전 세계 어떤 언론인과 마찬가지로 항상 침묵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 (페페 에스코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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