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 사회를 뒤흔든 한 뺑소니 사건
상태바
캄보디아 사회를 뒤흔든 한 뺑소니 사건
  • 아시아타임즈코리아
  • 승인 2019.05.20 10:5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캄보디아 국민들 사이에선 법 집행과 사법 시스템에 대한 불신이 팽배하다.

캄보디아에선 돈이 많거나 정치적 인맥이 두터운 사람이 범죄로 기소될 때마다 늘 똑같은 질문이 등장한다. 과연 그가 체포되어 제대로 벌을 받을까를 묻는 질문이다. 

최근 몇 주 동안 16세 소녀 인 마나 양이 일으킨 자동차 사고 때도 같은 질문이 제기됐다. 그녀는 지난달 26일 프놈펜의 고급 주택단지인 뜰꼭에서 고급 SUV를 운전하던 중 뺑소니 사고를 일으켰다. 

부유한 집안 출신인 인 마나 양은 아버지의 레인지로버 SUV를 몰고 가다 23세의 대학생 덤 리다 군을 친 뒤 곧바로 차를 버리고 도망갔다. 피해자는 현장에서 즉사했다. 

전문가들은 이 사건이 캄보디아 국민들 사이에 광범위하게 퍼져있는, 부유층과 일반인 사이에 각기 다른 법이 적용되는 사법 제도와 법 집행 방법을 둘러싼 불신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인 마나 양이 일으킨 뺑소니 사고는 사고 장면이 찍힌 CCTV 영상이 소셜 미디어에 유출되면서 대중의 관심을 끌었다. CCTV 영상에는 그녀가 과속으로 교차로에 진입한 뒤 오토바이를 타고 천천히 달리던 덤 리다 군을 치는 장면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캄보디아에선 경찰과 법원에 대한 신뢰를 잃은 많은 가난한 사람들이 훈센 총리가 정의를 실현해주기를 고대하고 있다. (사진: 로이터)
캄보디아에선 경찰과 법원에 대한 신뢰를 잃은 많은 가난한 사람들이 훈센 총리가 정의를 실현해주기를 고대하고 있다. (사진: 로이터)
대중의 분노

이후 대중의 분노가 커지자 훈센 총리는 사고 영상을 보았다며 논쟁에 뛰어들었다. 그는 인 마나 양을 ‘비도덕적 운전자’라고 부르며, 그녀에게 경찰에 자수하라고 설득했다.

그러자 사건이 발생한 지 사흘 뒤인 3월 29일에 인 마나 양은 아버지와 함께 경찰에 출두했다. 인 마나 양은 유죄가 인정되면 최대 3년 이하의 징역과 3,700달러(421만원)의 벌금을 물게 된다. 

정치 분석가 스레이스로스 라이는 “사회 정의에 대한 대중의 믿음이 점점 더 나빠지고 있다”면서 “법 집행을 둘러싼 불신은 정의는 가난하고 평범한 사람들이 누리기 힘든 사치품이라는 캄보디아인 국민들 사이에 뿌리 깊게 자리 잡은 인식에서 비롯됐다”고 주장했다. 그는 “소셜 미디어가 이 사건의 정의로운 심판을 요구하는 통로가 된 게 놀랄 일은 아니다”고 덧붙였다.  

몇 년 전에 캄보디아 대학 연구원들이 작성한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조사 참가자들 대다수는 범죄 수사 경찰을 ‘그다지’ 신뢰하지 않고 있었다. 또한 참가자의 56%는 경찰과 법원이 범죄 신고 조치 뒤에도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캄보디아 국민들 중에 정부 당국이 범죄를 해결해줄 거라고 믿는 사람은 거의 없기 때문에 대부분 범죄 행위를 보고도 신고조차 하려고 하지 않는다. 경찰이 수사에 착수하기도 전에 ‘돈'을 요구하는 일도 잦자 많은 가난한 사람들은 경찰에 아예 도움조차 요청하려고 하지 않는다. 

부유하고 정치적 인맥이 두터운 사람이 가해자로 지목될 경우 정의 실현에 대한 불신은 특히 더 커진다. 그는 조사를 받아도 무혐의로 풀려나는 경우가 흔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2014년 중부 프놈펜에서 아일랜드 국적의 한 사람이 뺑소니 사고로 숨진 사건이 일어났다. 하지만 사고를 일으킨 운전자는 재판에 회부되지 않았다. 이후 운전자가 경찰 고위직 인사의 딸이었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졌다. 

캄보디아에서는 교통사고가 흔하게 일어난다. 왕족이라고 해도 예외가 아니다. 2018년 6월 17일 시아누크 주 도로에서 발생한 교통사고로 노로돔 라나리드 왕자가 부상하고, 왕자비는 사망했다. (사진: AFP)
캄보디아에서는 교통사고가 흔하게 일어난다. 왕족이라고 해도 예외가 아니다. 2018년 6월 17일 시아누크 주 도로에서 발생한 교통사고로 노로돔 라나리드 왕자가 부상하고, 왕자비는 사망했다. (사진: AFP)
불안한 도로

소셜 미디어와 캄보디아 현지 신문들은 교통사고에 대한 기사들로 넘쳐난다. 캄보디아에선 2017년 한 해에만 적어도 1,900명이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하루에 약 5명 정도가 숨지는 꼴인데, 캄보디아에선 교통사고가 매년 주요 사망원인 중 하나로 여겨진다. 

비영리단체인 도로안전연구소(Institute for Road Safety Institute)의 얼 차리야 설립이사는 2016년 ‘프놈펜 포스트(Phnom Penh Post)’지에 쓴 글에서 “캄보디아에서 일어나는 자동차 사고 4건 중 1건은 뺑소니이며, 이 중 절반 가까이가 사망자를 냈다”고 주장했다. 그는 “뺑소니 운전자들이 차를 세워 부상자를 돕거나 즉시 응급의료 서비스를 요청하는 법이 없기 때문에 중상자와 사망자 발생 확률이 모두 높아진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많은 운전자들이 사고 현장에서 도망치는 주요 이유는 사고를 내고 주변에 머물다가 목격자들에게 얻어맞을까 봐 두려워서다. 전문가들은 분노한 목격자들은 그들 자신이 직접 정의를 실현하지 않으면, 가해자는 처벌받지 않을 것이라고 느낀다고 말한다.  

실제로 2018년 3월 한 대학교수가 프놈펜에서 오토바이 운전자를 쓰러뜨리고 현장에서 도주했다가 목격자들에게 맞아 숨질 뻔했다. 그는 목격자들에게 쫓기다 차에서 강제로 끌려 나와 구타를 당했다. 부상 정도가 너무 심한 나머지 교수는 병원으로 실려가 치료를 받았다. 

정치 블로거인 노안 세리보스는 “사고를 낸 가해자들이 도망가지 않으면 사람들에게 당한다”면서 “국민이 사법제도를 불신하기 때문에 직접 가해자를 처벌함으로써 정의를 실현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세리보스는 캄보디아에선 사회 정의 실현과 처벌이 여전히 중요한 문제라는 데 동의한다. 그러나 인 마나 양의 사례는 평범한 캄보디아 국민이 부자와 권력자의 희생자가 될 때, 항상 훈센 총리로부터 정의를 구하고 그의 개입을 원한다는 사실도 보여준다고 말했다.

그는 “빈곤층이 문제에 직면하고 지역 당국으로부터 정의를 찾을 수 없을 때 훈센 총리는 이 나라의 마지막 희망”이라고 덧붙였다.

훈센 총리 스스로 자신을 평범한 캄보디아 국민들의 유일한 보호자이자 중재자로 포장하고 있다. 그래야 그의 인기가 올라가기 때문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1985년 총리직에 오른 훈센 총리는 백성들이 제기한 불만을 해결해주는 왕의 역할을 자처하고 있다. 

 

소설 미디어에서 퍼지는 소문

그러나 인 마나 양 사건은 훈센 총리의 개입으로도 끝나지 않았다. 그녀가 경찰에 출석하자마자 소셜 미디어에선 다른 소문들이 퍼지기 시작했다. 그녀가 애초에 체포된 적이 없었다거나 구금 직후 풀려났다는 소문이었다. 그러자 많은 사람들이 다시 부자는 정의의 심판을 받지 않는다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실제로 대부분 헛소문임에도 불구하고 이런 종류의 소문이 맹렬하게 퍼진다는 건 많은 평범한 캄보디아 국민들이 사법 제도에 대해 느끼는 분노와 불신이 어느 정도인지를 드러내준다고 분석가들은 말한다. 

스레이스로스 분석가는 “소셜 미디어가 정부에 조치를 취하도록 압력을 가하는 수단이 됐다”면서 “그러나 성난 대중이 페이스북을 통해 행동하더라도 그것이 캄보디아의 실패한 사법 제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효과적인 방법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대중의 압력이 있어야 범죄가 제대로 조사된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소셜 미디어에서 모든 범죄가 사람들의 관심을 끌지는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더 큰 문제는, 사법 제도가 대중의 압력이 있어야만 작동한다면 대중이 체포 단계에서부터 유죄 판결 단계에 이르기까지 수사 내내 관심을 가져야 한다.

그러나 대중의 관심은 시간이 갈수록 줄어들기 마련이다. 인 마나 양 사건의 경우에도 실제로 재판이 열릴 때가 되면 재판 결과에 대한 관심은 지금보다 훨씬 더 줄어들어 있을 게 분명하다. (데이빗 허트 기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